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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  전시 ]

조심히 다가온 예술, 지친 마음을 위로하다
≪2020 아트페스타 in 제주(5th)≫


# 열린 문

코로나19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거리를 두도록 만들면서, 사람과 예술 사이의 거리도 벌려놓았다. 그 거리를 좁히기 위해 많은 전시와 공연이 온라인으로 대체되었다. 이러한 시도는 예술을 향한 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하는 듯했다. 그러나 태양이 내리쬐는 바다 한가운데 표류하고 있는 뗏목 위에서 갈증을 참지 못하고 소금물을 마신 것 같았다. 온라인 전시와 공연을 볼수록 작품을 직접 감상하고자 하는 갈증은 더욱 심해졌다. 다행히 사회적 거리두기가 1단계로 낮아지면서 다시 예술이 우리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오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2020 아트페스타 in 제주(5th)≫(이하 아트페스타)가 매우 조심조심 우리에게 다가왔다.
온라인 전시를 전제로 준비될 수 있었던 ≪아트페스타≫였기에 전시가 시작되기 바로 직전까지도 전시장에서의 작품 관람 여부는 불투명했다. 그러나 극적으로 전시장의 문이 열렸고, 이로써 114명의 작가, 400명의 시민이 참여한 전시의 진면목을 직접 감상할 수 있었다. 많은 작가와 시민이 전시에 참여한 만큼 전시장도 여러 곳이었다. 산지천 갤러리 외에도 탐라문화광장과 옛 하나새마을금고 건물에서 전시가 진행되었다. 야외 공간과 빈 건물을 전시장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기존 전시장에 작품을 설치하는 것보다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전시 장소만 보더라도 이번 전시를 위해 얼마나 고민하고 애썼는지 알 수 있었다.

# 세 개의 장소

탐라문화광장에 들어서자마자 작가 38명의 작품이 펼쳐졌다. 산지천의 이쪽과 저쪽을 연결하는 다리와 산지천 변 산책길에는 깃발 작품이 설치되어 있었다. 높고 파란 가을 하늘을 배경 삼아 깃발들은 바람을 타고 춤을 췄다. 형형색색의 깃발마다 각 작가의 개성이 담겨 있었다. 깃발은 감상을 위한 작품이기도 했지만, 탐라문화광장을 지나는 사람들이 전시에 흥미를 갖게 하는 안내자 역할도 했고, ‘페스타’라는 전시 제목에 걸맞은 축제 분위기도 만들어주었다. 산지천 가까이 다가가자 가을빛에 유독 반짝이며 흐르는 물 위에 작품도 같이 빛나고 있었다. 철망으로 만든 꽃, 나무로 지은 집, 철로 만든 물고기 등 다양한 재료와 형식의 작품들은 자연 속에서 하나로 어우러졌다. 

탐라문화광장 전시 장면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은 공간이 지닌 스산함을 옛 하나새마을금고 건물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낡은 건물 외관과는 달리 컴퓨터 프로그램을 사용한 영상 작품, 네온등으로 만든 설치 작품 등 새로운 매체와 형식의 작품이 선보였기 때문이다. 1층에는 작가 8명의 설치 작품과 영상 작품이 전시되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제주도가 현재 마주하고 있는 문제를 이야기한 작품 등을 보며 제주도를 바라보는 작가들의 시각에 공감했다. 2층에는 시민이 참여한 특별전시가 열렸다. 오늘날의 상징이 된 마스크를 그린 그림 속에는 제주도민의 다양한 생각이 개성 넘치는 표현으로 담겨 있었다.

옛 하나새마을금고 전시 장면

회화, 조각, 판화, 사진, 공예 등의 작품은 산지천 갤러리에 전시되었다. 전시 공간과 비교해 참여 작가의 수가 67명으로 많아 작품이 촘촘히 걸려있고 큰 작품도 없어 아쉬웠다. 그러나 이렇게 다양한 작품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다는 점이 아쉬움을 달래주기에 충분했다. 작가마다 다른 시각으로 표현한 제주도가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내가 보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한 제주도의 모습이 이렇게나 많았다니 놀라웠다. 또한 몰랐던 작가 작품을 만날 수 있어 신이 났다.

산지천 갤러리 전시 장면

# 의미들

2015년 시작되어 2018년까지 진행되었던 ≪제주국제아트페어≫가 2019년에는 열리지 않아 아쉬움이 컸는데, ≪아트페스타≫라는 새로운 모습으로 시작되어 반가웠다. 주최가 이도1동에서 제주시로 바뀌고, 전시 공간이 시민회관에서 산지천으로 옮겨졌으니 새로운 축제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지만, 홍보물에 ‘5th’라는 단어를 넣어 ≪제주국제아트페어≫를 이어가는 전시임을 분명히 밝혔다. 지속할 것처럼 얘기하던 제주도의 많은 전시가 한 번으로 끝나버렸다는 점을 생각하면, ≪제주국제아트페어≫의 지속이라는 측면만으로도 ≪아트페스타≫는 큰 의미가 있다. 이런 의미가 사라지지 않도록 내년에도 제6회 ≪아트페스타≫가 열려야 한다.
시민 참여, 야외 전시, 새로운 전시 공간 발굴 등은 이번 전시가 갖는 중요한 의의이자, ≪아트페스타≫가 앞으로도 지속해 나가야 할 부분이다. 또한 전시 장소를 다른 곳으로 바꾸지 않고 계속 산지천 일대로 하는 것이 ≪아트페스타≫의 정체성을 위해서 필요하다. 산지천이라는 장소의 특성이 다른 전시와 구별 짓는 ≪아트페스타≫의 특색을 만들어줄 것이다.
고심 속에 전시장이 개방된 만큼 조금은 조심스러웠지만, 그래서 작품 앞에 서 있는 순간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코로나19로 힘든 상황이지만 현장 관람이 계속될 수 있도록, 다시 전시장 문이 닫히지 않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다가온 예술이 코로나19로 지친 마음에 위안이 되었길 바라본다.


사진: 김연주

김연주

문화공간 양, 문화기획자. 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으로 문화공간 양 기획자로 활동 중이다. 제주도 마을, 공동체, 기억, 역사를 주제로 전시와 학술행사 등을 기획했으며, 거로마을의 과거와 현재를 예술가와 함께 기록하고 있다. 또한 새로운 예술개념을 제안하고 실험적인 작품을 소개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