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 NEXT
[ 생각을 수눌다 ]

오래된 공유경제, 접


# 접(계의 제주어)

1960년대까지만 해도 제주에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결사체가 많았다. 이런 결사체들은 마을 공동체 안에서 주로 이루어졌다. 쌀접, 제상접, 그릇접, 김매기접(검질접), 화단접, 농기구접, 방목접, 돼지접, 돈(錢)접, 갑장접, 사모관대접, 궤접, 상여접, 장막접, 산담접, 따비접, 마소접(쇠접, 말접), ᄆᆞᆯ고래접(연자매접), 면 빠는 접, 술접, 뛔계접, (가마)솥접, 멜그물접, 그물제, 담상제, 단수계, 이불접, 단포접, 모대접, 가마접, 마포접, 모현접, 융사접, 서당접, 책접, 회음접, 강례접 등 무수한 형태의 접들이 존재하였다.
이렇게 많은 접들이 제주에 생겨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서로 수눌기 위함이었다. 수눌음은 제주도에만 있는 특수한 형태의 품앗이로 단순한 협업 노동 이상의 의미를 지녀왔다. 제주도의 각 마을들은 몇 개의 소집단으로 나누어 일을 서로 도우는 협부조직(協部組織) 형태를 구성하고 있었다. 농번기에 김을 맬 때, 방앗돌을 굴릴 때, 밭을 밟아줄 때, 집을 지을 때, 혼례나 장례를 치를 때, 마을길을 닦을 때, 마소를 키울 때, 자녀를 교육할 때 등 모든 생활 영역에서 이 수눌음이 이어져 왔다. 공동체의 일상생활 자체가 수눌음이었다.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수눌음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제한된 섬 공간에서 부족한 물자를 충족시키고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순환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데,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원과 노동력의 연대와 공유가 절대적으로 필요하였다. 순환시스템이 끊어진다는 것은 섬 생활에서 생명 유지와 연결되는 것이었기에, 수눌음의 역사는 이런 절박함에서 비롯된 하나의 문제 해결 방식이었다.

# 위기를 극복하는 공동체의 힘

재미있는 것은 이런 순환시스템의 연결 고리가 끊어져 위기가 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몇 겹으로 접 활동을 유지하였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평생 여러 개의 접에 가입하여 수눌음 활동을 하다 보니, 한 구성원의 집에 어떤 일을 치르게 되면 마을 내 수십 개의 접이 가동되어 이중삼중으로 그 집을 돕게 되었다. 때문에 얼핏 온 마을 사람이 참여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훨씬 더 치밀하게 연대와 분배의 경제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공동체의 네트워크를 세밀하게 엮어내어 지원하는 기술적인 면모까지 지녔던 것을 볼 수 있다. 자원과 노동력의 연대 실행이 매우 치밀하게 구성되어 부조의 형태까지도 개인의 노동력 연대와 연결되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부담스러워하는 겹부조 문화도 실은 이런 문화 속에서 탄생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한 공동체 안에 처계, 모계, 부계가 같이 모여 살아 혈연적 연줄망이 중첩되어 있는 데다가 여기에 접 문화까지 더해지면서 한 공동체 안에서 다층적인 공동체 네트워크가 세밀하게 구성될 수 있었다. 물론 이것이 접 문화의 단단함을 유지해 주는 장치도 되었기에 사회 자본을 비축하고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데 용이하였다. 그래서 사회적 병리 현상들이 나타날 수 없는 사회적 구조를 지속시켜올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이니, 도둑질도, 비럭질도 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제주의 수눌음은 공동체가 위기를 겪을 때, 위기를 극복하고 사회 동력으로 작동한 사례들이 발견된다. 제주지역에서는 유독 남자들의 접보다 부인들의 접이 많았는데, 4·3 시기를 지나면서 물자가 부족한 상황에서 마을 공동체 재건 문제에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나서면서 나타났던 현상으로 보인다. 이런 수눌음 문화는 마을 공동체 의식과 문화를 공고히 하는 매개가 되었기에 마을의 성격이 반영된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접의 형태와 기능을 통하여 제주의 지역사회와 그 공동체 문화를 이해하는 지표가 되기도 하였다.

# 변화, 다시 수눌음 

그러나 그렇게 단단할 것만 같았던 수눌음도 변화를 피하지 못하였다. 1980년대 제주지역을 대상으로 한 관광개발과 감귤산업의 성장은 제주 사회에서 새로운 자원 및 자본 구축과 새로운 노동관계가  나타나는 계기가 되었는데, 이때 공유자원은 사유 자원화되기 시작하였고, 수눌음의 형태도 임금노동구조 형태로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사회 시스템과 공동체 문화가 급격히 변화하였다. 이 시기 접 문화도 급격히 소멸하는 과정을 밟았다.
제주의 수눌음에 대한 관심이 소환된 것은 세계적으로 공유경제가 현 자본주의 경제의 대안 경제로 떠오르면서이다. 이 공유경제 개념의 시작은 1984년 하버드대학교 마틴 위츠먼(Martin Weitzman)이 작성한 
공유경제: 불황을 정복하다(The Share Economy: Conquering Stagflation)라는 논문에서 처음 언급되었는데, 1985년 미국의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대책으로 공유경제를 내세우게 되었다. 이후 현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보여주고 있는 양극화의 문제, 경제 불황의 문제, 환경문제, 인간성 말살의 문제,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4차 산업 등을 접하면서 현 자본주의 경제 대안으로서 공유경제가 확산되었다. 그리고 이 공유경제에 대한 가치와 아이디어를 전통에서 찾고자 하는 노력들이 나타났다. 마치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Helena Norberg Hodge)의 책 오래된 미래를 보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은 자원과 사람을 공유하는 방식과 문화에 대한 새로운 고민이 전통을 새롭게 들여다보고 해석하는 일로 이어지고 있다.
제주에서도 전통적 생활 곳곳에 스며있었던 공유의 가치와 방식의 흔적들을 조명하기 시작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그중 하나는 바로 수눌음 문화에 대한 조명이다. 재화와 공간, 경험과 재능을 다수의 개인이 협업을 통하여 서로 빌려주고 나눠 쓰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공유경제의 모델은 제주의 수눌음 문화 형태와 닮아 있다. 수눌음의 현재적 가치를 보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위기 때마다 빛이 발현되었던 제주 공동체의 수눌음 문화 특성은 제주의 지역성을 나타내는 지표로서 대표성을 가질 수 있다. 이것은 우리의 미래에 위기가 온다 하더라도 주민 혹은 시민들이 만들어낸 공유의 힘으로 그것을 극복할 수 있다는 내재적 힘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제주 문화도시 비전을 수눌음으로 정하고 섬이라는 한정된 상황과 위기에 대한 통합적 대응 가치로서 수눌음 문화를 소환하여 제주 공동체의 문화 힘을 증진해 보는 것은 중요하다고 여긴다.

신흥1리 마을에서 잔칫날 마을 부인들의 수눌음.
잔치 음식을 만드는 데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였기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 일을 도왔다. (사진 제공: 서귀포시 남원읍 신흥1리 김미옥 어르신)

현혜경

제주연구원 책임연구원이다. 전남대학교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영국 셰필드 대학 등에서 연구하였다. 제주 공동체의 사회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